
운천雲川 김용金涌(1557-1620)은 귀봉龜峰 김수일金守一(1528-1583)의 장남으로 태어나 1590년 34세 때 문과급제를 하고 내직과 외직 등의 벼슬을 두루 거쳤다. 그는 1617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왔을 때 초가집 한 칸 지을 경제적 여력조차 없었다. 중앙 요직을 비롯해 수많은 벼슬을 했으나 청렴하고 강직한 품성으로 재물을 모으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거처를 정하지 못한 채 백운정白雲亭에서 지내다가 1620년에 숨을 거두었다. 당시 그는 “내 병은 약으로 나을 병이 아니다.”라며 “나는 맹자가 말씀하신 ‘곤궁하더라도 의를 잃지 않고[窮不失義], 현달해도 도를 벗어나지 마라[達不離道]’는 8자를 평생 가슴에 담아 왔다. 너희들도 이것을 마음에 새겨 잊지 말라.”라는 유계를 남겼다. 그로부터 이틀 뒤 10월 19일에 숨을 거두었다.

김미영金美榮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일본 도요대학교 사회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가례의 수용과 조선사대부의 집안 다스리기』, 『유교공동체와 의례문화』, 『유교의례의 전통과 상징』, 『도학의 길을 걷다, 안동 유일재 김언기 종가』, 『학봉 김성일, 충군애민의 삶을 살다』, 『숭정처사의 삶을 살다, 봉화 팔오헌 김성구 종가』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제례음식의 규범과 토착화」, 「유교이념의 실천도구로서 음식」 등 다수가 있다.

1. 내앞 의성김씨와 운천종가
1) 내앞마을의 인문지리적 성격
2) 내앞 의성김씨의 입향과 운천종가
2. 운천종가의 인물
1) 가학 전통을 잇다
2)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다
3. 운천 김용의 삶과 생각
1) 운천종가의 두 인물, 귀봉 김수일과 운천 김용
2) 가족과 삶, 가통 수립에 힘을 쏟다
3) 관직과 삶, 청렴과 올곧음을 가슴에 품다
4. 종가의 문화유산
1) 기록문화유산
2) 건축문화유산
5. 종가의 제례문화
1) 청계와 아들 5형제를 기리다, 사빈서원 향사
2) 운천 김용, 불천위 제례로 기억되다
6. 종가의 현재와 미래
1) 종손과 종부로서의 삶
2) 종가문화의 계승에 대한 고뇌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