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복추(張福樞, 1815~1900)는 19세기에 활동한 문인이다.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하(景遐), 호는 사미헌(四未軒)이다. 그는 일정한 선생이 없었으나, 8대 조부 여헌(旅軒) 장현광( 張顯光)과 영남학의 거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문을 충실히 계승하여 발전시킨 성리학자이자 예학자이며, 당시 최고의 학단을 이끈 교육자이다. 이런 그의 학문적 성과는 장승택(張升澤), 조긍섭(曺兢燮), 송준필(宋浚弼), 장지연(張志淵) 등 735명의 다양한 제자들에게 전수되면서 조선 유학의 마지막 봉우리를 형성했다.
그는 독실하고 근면한 자세로 초야에 은거하며 오로지 도학(道學)의 실천적 수행과 성리학의 중심 과제에 대한 분석과 저작에 일생을 바쳤다. 그의 학문적 논의의 정밀함은 당시 주변에서 한 학파를 형성하였고, 또한 성리학의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시도하고 있던 일군의 학인들과 교유하며 자신의 입론을 견실히 강화시켜 나갔다. 그의 학문적 성과와 시문(詩文)은 아들과 문인들에 의해 정리되어 간행되었다. 남다른 감수성과 직관력, 학문 세계를 보여주는 장복추의 문학 세계는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이 책의 저본은 1906년에 칠곡군(漆谷郡) 각산면(角山面) 구욱재(求勗齋)에서 간행된 초간본이며, 그 소장처는 국립중앙도서관이다. 본 연구소에서는 저본을 다시 선명하게 디지털 사진으로 찍어 기존의 오류를 일일이 바로잡고 원문을 꼼꼼히 교감표점하여 관련 학계의 이용자들에게 신뢰도 높은 연구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였다.

著者 張福樞
1815∼1900. 자가 景遐이고 호는 四未軒, 또는 甪里山人이며 본관은 仁同(玉山)이다. 그는 일정한 선생이 없었으나 8대 조부 旅軒 張顯光과 영남학의 거두인 退溪 李滉의 학문을 충실히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조선 후기 영남 지방의 三徵士(張福樞, 金興洛, 柳疇睦)이자 三學者(張福樞, 李震相, 金興洛)의 한 사람인 그는 성리학자이자 예학자이며 당시 최고의 학단을 이끈 교육자이다. 이런 그의 학문적 성과는 張升澤, 曺兢燮, 宋浚弼, 張志淵 등 735명의 다양한 제자들에게 전수되면서 조선 유학의 마지막 봉우리를 형성했다. 저서로는 《四未軒集》 이외에 《夙興夜寐箴集說》, 《問辨至論》, 《四書啓蒙》, 《易學啓蒙》, 《性理雜儀》, 《家禮補疑》, 《三綱錄刊補》 등이 있다.
校勘標點 宋熹準
1958년 大邱 達城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한문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한학촌 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韓國古典飜譯院 圈域別據點硏究所 慶北大學校 嶺南文化硏究院 責任硏究員으로 재직하고 있다. 역서로는 《사미헌집》권1∼권3, 《대동운부군옥》권11∼권20(공역)이 있고, 편저로는 《心經註解叢編》10권과 《近思錄註解叢編》10권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조선의 마지막 문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