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1641-1707) 선생이 해저마을에 정착한 이래 대과 급제자 18명과 소과 급제자 63명을 배출했다. 이는 의성김씨 전체에서 대과 급제자 41명, 소과 급제자 128명이 나온 것과 비교해 볼 때 참으로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입향조인 팔오헌 선생은 해저마을에 자리를 잡은 뒤 후손들의 교육에 전력을 쏟았다. 하지만 재정적인 이유로 서당 건립을 실현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는데, 이에 후손들이 학록서당(鶴麓書堂)을 세워 선생이 평소에 강조했던 근면·자조·협동에 바탕을 둔 자립 정신과 실학 사상을 이어 나갔다. 그리하여 해저마을에는 벼슬을 상징하는 솟대가 빼곡하게 세워져 “바래미 솟대 그늘 때문에 우케(벼)를 못 말린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특히 이러한 실학적 전통은 근대까지 이어져 바래미김문에서 독립유공자로 추대된 사람이 14명이나 되는데, 이는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김미영(金美榮)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졸업하고 인하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일본 도요대학교 사회학연구과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유교공동체와 의례문화』, 『유교의례의 전통과 상징』, 『도학의 길을 걷다, 안동 유일재 김언기 종가』, 『학봉 김성일, 충군애민의 삶을 살다』, 『가족과 친족의 민속학』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19~20세기 풍산김씨 일기를 통해 본 의례생활」, 「종가문화의 전승기반과 변화양상」 등 다수가 있다.

축간사
지은이의 말
1 종가의 형성과 역사
1 해저마을의 인문지리적 성격
2 종가의 혈통과 해저마을 입향
2 종가의 인물과 삶
1 팔오헌 김성구의 삶과 사상
2 종가의 인물
3 종가의 문화유산
1 기록 문화
2 건축 문화
4 종가의 제례 문화
1 불천위 제례
2 추석 차사
3 묘사
5 종가의 어제와 오늘
1 종손 교육, 종가를 지속시키는 힘
2 종손이 꿈꾸는 종가의 미래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