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만양은 조선 후기 경상도 영천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다. 영천의 임란 의병장 호수 정세아의 5대손으로 중년에 보현산 아래 횡계리에 집을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학문에 정진하고 제자를 가르쳤다. 퇴계학파의 정맥을 이은 갈암 이현일을 스승으로 모셨고, 갈암이 세상을 떠난 이후 밀암 이재와 함께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존재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정만양의 일생과 학문을 논하면서 동생 정규양을 빼놓을 수 없다. 형의 호는 훈수塤叟이고 동생의 호는 지수篪叟였다. 훈은 진흙으로 만든 나발이고, 지는 대로 만든 피리인데, 형제의 우애를 상징한다. 형제의 문집은 호에서 한 자씩 따서 『훈지집』이라 명명되었다. 훈수의 10대 종손 정극 박사는 객지에서의 오랜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상의 숨결이 남아 있는 옥간정과 모고헌의 건너편 옛 종택 터에 새 집을 지어 거주하고 있다.

우인수禹仁秀
대구 출신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사와 생활사 그리고 지방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선후기 산림세력연구』, 『조선시대 울산지역사 연구』, 『임란의병의 힘, 호수 정세아 종가』, 『조선후기 영남 남인연구』 등의 저서와 수십 편의 논문이 있다.

축간사
지은이의 말
1 영일정씨와 영천
1 영천의 역사지리적 환경
2 영천 입향과 정몽주 존숭
3 정세아 대종가의 형성
4 횡계리의 정만양 종가
2 정만양규양 형제의 학문과 삶
1 퇴계학맥의 계승과 외연의 확대
2 이기론과 예론
3 무신란의 발발과 창의
4 횡계구곡의 경영
3 정만양규양 형제의 국정 개혁론
1 토지제도 개혁론
2 군정 개혁론
3 인재 육성과 선발제도 개혁론
4 종가의 건축물
1 옥간정
2 모고헌과 횡계서당
3 양계정사와 청호서원
5 종가의 제사와 종손종부의 삶
1 종가의 제사
2 변하는 것과 지키는 것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