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저자소개 차례
서평
국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가뭄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빈발하고 있다. ‘물 부족으로 인한 위기 상황’의 예시로 가까이는 갈라진 논바닥과 말라버린 저수지 화면을, 멀리는 사막 면적의 증가 비율과 자연발생적 초대형 산불에 관한 소식을 듣는 것이 ‘특별한’ 뉴스거리가 아닐 지경이 되었다. 이 책 『물 민영화를 넘어: 거버넌스로 푸는 도시 물 위기 해법』은 이러한 전 지구적 현실을 생각할 때, 매우 시의적절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캐런 배커는 물에 관한 기존의 정부 대 민간 공급 모델에 심각한 결점이 있으며,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에 대한 가정이 맹목적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는 문제 제기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는 세 가지 도시 물 공급 모델 ― 정부, 민간, 공동체 ―을 제시하면서 이 세 가지 모델이 각각 결함을 안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 결함을 국가의 실패, 시장의 실패, 거버넌스의 실패 개념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거버넌스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이는 저자가 자신의 분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와 관련되어 있다. 역자가 적시하였듯 이 책의 주제는 도시 물 위기에 대한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찾으려면 공공 대 민간 논쟁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다소 진부한 견해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이기 때문이다.
캐런 배커 주장의 핵심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물 공급에 관한 정부 혹은 민간 모델 모두 어느 쪽도 도시 곳곳에 물을 보편적으로 공급하지 못하였음을, 즉 잘 운영되지 않는 공공 및 민간 물 공급망의 사례가 더 많음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세계 곳곳의 사례들을 통해 볼 때, 물 공급은 지역의 특색과 소득 수준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공식적인 수도망만이 표준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셋째, 전 세계 도시 곳곳에 물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사회적․정치적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넷째, ‘물은 공공재’라는 주장하에 물 민영화를 반대하는 주장은, 물이 공공재의 필수 조건인 비경합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제가 잘못되었다. 물은 공유재 혹은 공유 자원으로 인식하고, 물 위기와 물 문제에 관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다섯째, ‘물 인권’이 인간중심주의로 치달아 생태를 고려하지 않고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오히려 충분한 편이며, 잘못된 ‘거버넌스’ 때문에 물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 것이라는 저자의 일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장 우리의 현실만 돌아보더라도 이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말라붙은 지천 바닥과 모내기 시기를 놓칠 만큼 논물을 대기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주요 강의 수문 안에는 물이 그득하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논밭으로 물꼬를 돌리기 위해 경쟁하고, 도심에서도 급수차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물 민영화에 대한 논쟁은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격화될 것이며, 거버넌스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책의 객관적 독자로 머물 것이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서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동참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