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저자소개 차례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하여 논한 책은 일본에서 많이 출간되었고, 국내 일본 연구자들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국내에 이를 소개하고 또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 일본사 분야에서 일본과 천황의 전쟁책임, 나아가 이들의 식민지 지배책임을 심도 깊게 실증적으로 논한 출판물은 번역서, 저서를 막론하고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한일 관계를 되돌아보면 양국 간 역사적 경험을 새로운 시각에서 논할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예로 들면, 한국은 일본에 과거사 책임을 추궁하고,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은 1965년에 체결한 일명 ‘한일협정’(정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이다)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하며 평행선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좋든 싫든 한일 양국은 1965년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한편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전쟁책임론은 대체로 1931년부터 1945년까지의 시기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제 한국은 1965년 프레임을 파괴하고, 일본은 ‘전쟁책임론’에서 벗어나 ‘식민지 지배책임론’으로 확대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구체적인 사실 추적을 통해 천황제의 전쟁책임론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논증하고 있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쇼와천황 히로히토뿐 아니라 그 이전 세대인 메이지천황 무쓰히토의 재위 기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천황제의 전쟁책임을 규명한다. 저자는 무쓰히토 천황이 청일전쟁․러일전쟁에 관여한 방식과 그의 침략책임을 명확히 하고, 히로히토가 의식적으로 이를 계승하였음을 밝힌다. 이를 통해 전후 아시아 침략을 통한 경제‘발전’에 기반을 둔 상징 천황제의 침략책임을 특정한 천황 한 사람이 아닌 제도로서의 천황제 자체에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일본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 달리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히로히토는 정치와 군사에 주체적으로 관여했으며, 따라서 구체적인 전쟁책임을 져야 함을 입증한다. 셋째, 히로히토는 미․일안보체제 제창을 시작으로 전후에도 일본 정치․외교에 큰 영향을 미쳤고 전후 일본의 존재 형태에 결정적으로 관여하였음을 밝힌다. 이 과정에서 히로히토가 전쟁 당시뿐 아니라 전후에도 아시아 각국을 경제적으로 수탈했고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함을 밝히고 있다. 천황제의 전쟁책임을 자국민 시점에서 논한 이 책이 향후 이 분야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양국 간 관계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