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개 저자소개 차례
진민사(鎭民祠)는 고려시대 태자첨사(太子詹事)를 역임하고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진 의성김씨 시조 김용비(金龍庇) 공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공이 세상을 떠난 직후 고을 사람들이 공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의성김씨 집안에서 주도하여 건립한 문중 재사(齋舍)가 아니라 지역민이 공동으로 건립한 향현사(鄕賢祠)의 일종이었다는 점에 중요한 특징이 있다.
조선 효종 연간, 의성김씨 집안에서는 진민사와 별개로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묘소 아래쪽에 오토재(五土齋)를 건립하였다. 오토재는 의성김씨 집안에서 공의 묘사(墓祀)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문중 재사이다. 그러므로 고을 공동의 진민사와 성격이 달랐으며,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줄곧 의성 관아 옆에 있던 진민사와 별개의 재사로 존재해 왔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에 큰 변화가 생겼다. 대원군이 서원을 훼철할 때 진민사도 훼철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집안사람들이 진민사를 임시로 오토재 경내에 별묘(別廟) 형식으로 이건하였는데, 이후 진민사는 사실상 오토재의 일부처럼 인식되었으며, 관리와 제향 또한 주로 의성김씨 집안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민사의 가을 추향(秋享)을 폐지하는 대신 오토재의 묘향(墓享)으로 이를 대체하는 등 구체적인 향례의 진행 일자와 절차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겨났다.
진민사와 오토재는 이처럼 당초 별개로 존재하던 향현사와 재사가 후대에 하나로 통합 운영된 대단히 특이한 곳이다. 그리고 영남 지역의 대표적 토성(土姓) 가운데 하나인 의성김씨 집안의 시조를 모시고 있는 곳이라는 점, 관향(貫鄕)의 원류지에 변함없이 줄곧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는 점, 설립 이래 지금까지 부단히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생산된 문서를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의성김씨의 유래와 진민사 사적의 문화적 가치, 군현 제의 공간 변화의 상징적 의미, 오토재 문서의 현황과 특징, 진민사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례적 성격 등을 학술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조선 효종 연간, 의성김씨 집안에서는 진민사와 별개로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묘소 아래쪽에 오토재(五土齋)를 건립하였다. 오토재는 의성김씨 집안에서 공의 묘사(墓祀)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문중 재사이다. 그러므로 고을 공동의 진민사와 성격이 달랐으며,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줄곧 의성 관아 옆에 있던 진민사와 별개의 재사로 존재해 왔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에 큰 변화가 생겼다. 대원군이 서원을 훼철할 때 진민사도 훼철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집안사람들이 진민사를 임시로 오토재 경내에 별묘(別廟) 형식으로 이건하였는데, 이후 진민사는 사실상 오토재의 일부처럼 인식되었으며, 관리와 제향 또한 주로 의성김씨 집안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민사의 가을 추향(秋享)을 폐지하는 대신 오토재의 묘향(墓享)으로 이를 대체하는 등 구체적인 향례의 진행 일자와 절차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겨났다.
진민사와 오토재는 이처럼 당초 별개로 존재하던 향현사와 재사가 후대에 하나로 통합 운영된 대단히 특이한 곳이다. 그리고 영남 지역의 대표적 토성(土姓) 가운데 하나인 의성김씨 집안의 시조를 모시고 있는 곳이라는 점, 관향(貫鄕)의 원류지에 변함없이 줄곧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는 점, 설립 이래 지금까지 부단히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생산된 문서를 다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의성김씨의 유래와 진민사 사적의 문화적 가치, 군현 제의 공간 변화의 상징적 의미, 오토재 문서의 현황과 특징, 진민사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례적 성격 등을 학술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