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의 작품은 어렵다. 사유극(Gedankenspiel)이라 표현될 정도로 사변적인 내용, 사건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지 않는 장면들로 인해 읽기도 어렵지만 공연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뮐러의 독자적인 역사인식과 파격적인 드라마 형식을 이해하게 되면 이러한 문제들은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 제1장과 2장에서 저자는 우선 뮐러의 역사인식을 살펴본 후, 전통적 희곡양식과의 결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뮐러 희곡작품의 특징을 다룬다. 이는 구성의 포기, 스토리 위주의 희곡 탈피, 열린 구조와 미완의 형식 선호, 추상적 의식의 흐름과 다양한 상징과 은유의 활용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어 제3장과 제4장, 그리고 제5장에서는 사회주의 혁명 이전 시대, 특히 프로이센 시대를 바라보는 뮐러의 시각, 제2차 세계대전과 독일 분단을 바라보는 뮐러의 시각을 작품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마지막 제6장에서는 브레히트 교육극의 비판적 수용이라 할 수 있는 뮐러의 교육극을 작품과 함께 다룬다. 열린 구조와 미완의 형식을 선호한 뮐러의 토막극 형식 드라마는 우리 탈춤의 형식과 유사하다. 사유의 놀이 속으로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뮐러의 연극미학은, 틈새를 미리 설정하고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탈춤의 수법과 연극미학적으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가 제시한 방향과 우리 전통극의 미학이 같은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뮐러의 무대작업 방식을 활용하면서 뮐러 연극의 사변적 측면을 탈춤의 신명으로 넘어설 수 있다면 이는 서구 연극이론의 주체적 수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