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는 관념에 머물던 性理學이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道學으로 진전하는 학문적 변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는 정치세력의 역학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朋黨체제가 확립되는 정치적 변화를 맞고 있기도 했다.
그러한 학문 및 정치적 변화의 중심에는 사림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性·情의 이치를 밝혀 出·處의 정당성을 찾는 학문이 도학이라 규정했다. 이는 그들의 도덕과 명분을 전제로 한 현실인식과 대응자세의 이념이 성리학의 理氣心性論에 근거하고 있음을 표방하는 것이었다. 곧 그들은 리기심성론을 매개로 학문적 整合性을 확보함과 동시에, 정치적 正體性을 확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조선중기 사림의 학문세계가 정치적 이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붕당의 정치철학을 규정하는 근원은 학파의 학문적 이념에 있게 되는 셈이다. 붕당이 학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가운데 그것을 발판으로 公論대결을 전개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조선중기 사림의 리기심성론은 주로 철학계의 관심분야로 국한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에 따라 그것이 정치 및 사회현실에 어떠한 방법으로 접목되는지에 대한 검토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사림의 리기심성론 논의의 저변에 실천성이 담보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실용적 성격이 결여된 空理空談의 관념논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는 물론 역사학계의 지배적 경향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학제 간 연구가 취약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시도이며, 구체적으로는 ‘사림의 도학적 세계관 형성’, ‘사림의 세계관과 학파의 분화’, ‘학파의 붕당화와 당론’, ‘붕당의 대립과 조정론의 대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조선중기 사림의 성리학적 세계관의 분석을 통해 學派의 학문경향과 함께 政派의 정치철학을 규명하고, 철학계의 연구 성과를 역사적 현상에 투영함으로써 이 책은 조선중기 역사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