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근원적 인과관계가 있다. 이 인과관계들이 세월과 함께 층층이 쌓일 때 거대한 역사가 된다. 그리고 모든 근원적 인과관계에는 발단이 있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나무의 우람한 줄기와 잎, 그리고 꽃에 매료된 나머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일구어 낸 뿌리를 놓치곤 한다.
그것이 사람과 관련되어 있을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급박하게 진행되기 마련인 사안의 전모를 소상히 알려주는 정전(正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대를 풍미한 사건과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사상과 행동조차도 몇몇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편린(片鱗)처럼 부유(浮游)하다 곧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프랑스 지식인사(知識人史)에 대한 상세한 고찰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의미가 크다. 우선 전 2권, 3부 1,500여 쪽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는 드레퓌스 사건에서 1차대전에 이르는 시기를 기술한 것으로, 모리스 바레스가 중심인물이다. 지은이가 ‘진실’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드레퓌스 사건에 개입하여 주역으로 활동한 졸라가 아니라, 민족주의자 모리스 바레스를 제1부의 중심인물로 삼은 것은 의아스럽게 여겨진다. 졸라는 1902년에 사망하여, 1923년에 사망한 바레스보다 더 오랫동안 지식인의 역사에서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 민족과 프랑스 국가 수호를 중시하는 민족주의자들과 ‘진실’과 ‘정의’를 부르짖는 좌파 지식인들이 벌이는 팽팽한 대립·대결이 박진감 넘치는 흥미를 자아낸다.
제2부는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시기를 포괄하며, 앙드레 지드가 중심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 행각과 동성애를 옹호하는 작품 『코리동』(1924년)으로 세인들의 지탄을 받았으며, 공산주의에 현혹되어 소련 측의 선전전술에 이용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실성’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그는 『콩고 기행』(1927년)에서는 억압받고 있는 식민지인들의 참상을 알렸으며, 『소련 기행』(1936년)에서는 소련 당국의 화려한 선전간판 뒤쪽의 억압적인 현실을 고발했다. 이 시기는 이탈리아에 파시즘 체제가 성립되고,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과 스페인 내전 등이 일어난 때이다. 이 사건들은 지식인들을 다시 대치되는 두 진영으로 나누어 놓았다. 1930년대에는 ‘좌파 지식인들’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우파 지식인들’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파 지식인들은 주로 민족주의자들이었는데, 피에르 드리외 라 로셸이나 로베르 브라지야크 같은 사람들은 ‘파시스트’로 자처하기까지 했다. 지은이는 30년대 말에서 2차대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세력이 승리를 거두고 프랑스 내에 공산당이 창당되면서, 혁명에 대한 희망으로 들뜬 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매료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제3부는 프랑스가 독일 강점에서 해방된 이후부터 20세기 말에 이르는 시기를 포괄하며, 쟝-폴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사르트르는 2차대전 직후에 잡지「현대」를 창간하면서 참여문학 이론을 정립했으며, 시대의 갖가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투쟁함으로써 20세기 후반 지식인의 전형이 되었다. 2차대전을 전후하여 프랑스에는 사르트르를 비롯하여 공산주의에 매료된 지식인들과, 사르트르의 친구 레이몽 아롱 같은 반공산주의자 지식인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지식인들에 대한 공산주의의 유혹, 레지스탕스 운동과 해방 후 부역자 숙청 등의 프랑스 국내 문제뿐만 아니라, 소련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둘러싼 논쟁, 마오쩌둥주의에 매료된 지식인들이 빠져든 오류, 알제리 전쟁과 이스라엘-아랍 분쟁 등으로 이어지는 국제적 문제에 대한 프랑스 지식인들의 반응 등이 이 책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현실참여의 폭을 가늠케 해준다. 아울러 보브와르의『제2의 성』(1949년)이 프랑스 국내외에 불러온 파장, 1956년의 헝가리 사태와 소련 군대의 무력진압 과정을 보면서 프랑스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는 과정, ‘68년 5월 사태’를 둘러싸고 사르트르로 대표되는 좌파 지식인들과 아롱으로 대표되는 우파 지식인들이 첨예하게 대치한 상황 등도 이 책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